30년에 걸친 두 여성의 관계사를 15부작으로 펼쳐낸 <은중과 상연>의 섬세한 접근은 분명 인상적이다. 김고은과 박지현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 시간의 층위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연출은 두 여성 사이에 있는 애증과 연민과 동경의 감정들을 깊이 있게 묘사했다. 초등학생 시절의 순수함부터 40대에 겪는 과거의 회한까지. 두 인물이 겪어온 시간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은중과 상연>이 안고 있는 한계는 뚜렷하다. 앞서 두 여성의 관계묘사에 천착하는 드라마의 감정선은 섬세한 반면, 정작 드라마가 그려내는 것은 예측 가능한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질투와 동경, 갈등과 화해, 그리고 죽음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놓쳤던 감정들을 다시금 복기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공식은 익숙하다. 15부작이라는 방대한 분량은 오히려 이야기의 전형성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연 은중과 상연의 관계사가 이토록 긴 시간을 들여 탐구할 만큼 특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