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는 너무 많은 걸 담았다. 영리하지만 아쉽다. 그리고 슬프다.
권오광 감독의 '돌연변이'는 돈 30만원에 미래가 저장 잡힌 한 청년의 이야기다. 30만원에 제약회사 임상 실험에 참여했다가 생선인간이 된 20대 청년 박구. 그는 보상은커녕 아무도 모르게 인체실험을 당하고 있었다.
간신히 탈출해 하룻밤 인연이 있는 여인 집을 찾아간다. 그 여인, 박구를 제약회사에 돈 몇 푼에 다시 팔아넘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듯한 일을 방송사 시용 기자가 파헤친다.
정규직 기자들이 파업을 하는 동안 임시로 뽑은 기자, 지방대 출신에 그저 무엇이든 시키면 잘 할 수 있다는 남자는, 인터넷에 떠도는 키보드 워리어를 일단 취재해보라는 지시를 받는다. 자기 남자친구가 생선인간이 됐다며 네티즌과 싸워대는 여자아이를 만나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알아보라는 것. 잘 되면 정규직으로 뽑아준다는 말에 무작정 그 여자를 찾아 나선다.
시용 기자는 자기 말이 사실인지 그럼 제약회사에 가보자는 당돌한 여자를 쫓아간다. 결국 제약회사에 묶여 실험을 당하고 있던 박구를 구해낸다.
세상을 뒤흔드는 뉴스. 잘나가는 인권 변호사가 박구 변호까지 맡는다. 박구는 청년 실업을 상징하는 존재가 돼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약회사에서 이 실험을 성공하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말에 여론은 흔들린다. 누구는 박구를 응원하는 촛불 시위를 하고, 누구는 박구가 종북 생선인간이라며 화형식까지 연다.
아버지는 그런 박구로 보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고, 시용 기자는 갈 곳 없는 박구가 불쌍하지만 정규직 임용이 걸려있으니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 하룻밤 여인은 박구를 좋아하기보단 자기 처지와 닮았기에 안쓰러웠을 뿐이다. 외로운 박구. 박구의 선택은 과연 어떻게 될까.
'돌연변이'는 많은 걸 담았다. 청년 실업, 지방대 차별, 황우석 사태, 안수기도로 병을 고친다는 종교, MBC 파업, 이익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언론, 좌우 편가르기, 욕망을 부추기는 대기업, 꿈이란 무엇일지, 참언론이란 어떤 것일지 등등등. 이 많은 걸 한 그릇에 담아냈다. 영리한 선택이었고, 때론 유쾌하다. 다만 너무 많은 걸 담아냈기에 가이드가 없으면 쉽게 쫓을 수 없다.
이 가이드를 시용 기자 역할을 맡은 이천희가 한다. 이천희는 내레이션으로, 관찰자로, 때로는 참여자로, 비겁하거나 용기 있게 함께 한다. 비빔밥을 같은 맛으로 통일하는 고추장 역할을 한다. 이 영리한 선택이 버거울 수 있었던 많은 재료를 하나로 통일한다. 그래도 가짓수가 너무 많다보니 재료의 깊은 맛을 하나하나 음미 하기는 부족할 수 밖에 없지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가 됐다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2015년 한국에서 어느 날 임상 실험을 받고 났더니 생선이 되는 '돌연변이'가 됐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벌레가 되니 천덕꾸러기가 됐다는 '변신'의 이야기. 2015년 한국에선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싶지만 자고 일어나니 생선이 됐고, 유명세를 얻었다가, 다시 잊혀지는 그런 이야기가 됐다. 부조리고, 불합리고, 고독이다.
권오광 감독은 이 이야기에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바다로 떠나는 박구와 시용 기자에게 희망을 심는다. 그 희망은 고문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여전히 거칠고, 무자비하니깐. 그래도 권오광 감독은 동시대 젊음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듯 하다. 전형적이지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잠깐의 위로일 수 있다.
그래서 '돌연변이'는 누구에게는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일 것이며, 누구에는 숙면을 유도하는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영리하지만 아쉽고, 그래서 슬픈 이야기다.
영화 내내 생선탈을 뒤집어 쓴 이광수는 쭈뼛거리는 손과 움츠린 어깨로 많은 걸 이야기한다. 이광수는 '좋은 친구들'에 이어 아직 보여줄 게 많은 배우란 걸 입증했다. 시용 기자 역할을 맡은 이천희는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았다. 정규직 기자가 던진 커피를 뒤집어 썼을 때, 그의 처연한 눈빛은, 안 보여주면서 보여주는 연기의 맛을 느끼게 한다. 하룻밤 여인 역의 박보영은, 언제나 진리다. 미소녀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 사랑스럽다.
'돌연변이'에서 생선 인간의 이름은 박구다. 'F000 You'를 연상시킨다. 이름처럼 부조리한 세상에 내민 가운데 손가락이었으면, 영화가 좀 더 힘이 넘쳤을 것 같다.
10월22일 개봉. 12세 관람가. 93분 런닝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