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극장가, 한국영화들의 색깔을 정의하라면 칙칙한 회색빛이다. 아니 좀 더 들여다보면 거무튀튀한 때가 묻은 잿빛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스릴러를 기반으로 갖가지 요소를 뒤섞어 만든 어두운 색의 영화들이 연이어 관객들을 찾아간다.올해 흥행한 한국영화들의 큰 요소들은 액션과 코믹이었다. 상반기 흥행한 영화 <연평해전>과 <스물> 그리고 하반기 1000만 관객 행진을 이어간 <암살>과 <베테랑>은 기본적으로 액션을 깔고 그 위에 애국심, 코믹 등의 요소를 뒤섞었다. 사회 내부의 곪은 부분을 다루는 영화는 <베테랑>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11월에 선보이는 영화들은 연이어 대한민국 사회의 곪아버린 부분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게다가 숨돌릴 틈 없는 긴장감을 부여하면서 재미를 줄 예정이다.
그 대열의 가장 선두에 서있는 작품이 22일 나란히 개봉한 노덕 감독의 <특종:량첸살인기>와 김봉주 감독의 <더 폰>이다. 두 작품 모두 스릴러 장르에 기반해 긴장감을 영화의 주된 정서로 삼았다.
<특종:량첸살인기>는 가제 <저널리스트>로 알려졌던 작품이다. 이혼과 해고 위기에 몰렸던 방송사 기자 무혁(조정석)이 어느 날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한 특종을 보도하지만 이 보도가 소설의 한 구절임을 알고 실수에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이후 이 소설의 문구대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생기면서 진실에 쫓기는 무혁의 모습을 다뤘다. <더 폰>은 1년 전 아내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은 주인공 동호(손현주)가 어느 날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고, 1년 전의 아내를 죽음으로부터 구하려 나선다는 초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작품은 모두 진실과 가족의 생명에 쫓고 쫓기는 주인공들의 다급한 마음을 중심으로 짜였다. 거기다 한국 언론 시스템의 병폐와 서민들의 말에는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 공권력에 대한 냉소가 담겼다.
이어 개봉하는 영화들도 그 색깔은 칙칙한 잿빛으로 비슷하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윤준형 감독의 영화 <그놈이다>와 다음 달 5일 개봉하는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19일 개봉하는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놈이다>는 한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끔찍이 아끼던 여동생을 살인범으로부터 구하지 못한 청년 장우(주원)가 천도재를 지내던 와중 제사의식 도구가 지칭하는 남자를 살인범으로 확신하고 추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윤석과 강동원이 출연하는 <검은 사제들>은 초현실적 존재로부터 평범한 소녀를 구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배우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등이 출연하는 <내부자들>은 대한민국 권력 핵심부에 들어가 있는 조직폭력배와 검사, 언론인 등의 부패와 그들의 욕망에 따른 배신과 복수를 다뤘다.
<그놈이다>도 주인공과 범인으로 지목되는 인물 사이의 다급한 추격전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주로 밤 촬영이 많다. <내부자들> 또한 자신이 처리하지 않으면 언제 자신이 처리될지 모르는 주인공들의 다급함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두 작품은 또한 동시에 각종 부조리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대한민국 공권력의 허상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이어 개봉하는 것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 영화들은 연말 대목을 맞이하기에 앞서 상대적으로 비수기로 여겨지는 11월 극장가의 패권을 다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그놈이다>에 출연하는 배우 유해진은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이 많아서 걱정은 된다. 누가 잘 되면, 이는 또 누가 잘 안 되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경쟁에 대한 부담감을 밝혔다.
<그놈이다> 윤준형 감독은 “스릴러에 기반한 작품들이 많지만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른 부분이 다 있다. 우리 영화는 토속적인 느낌이 차별점”이라며 차별화에 신경쓰고 있음을 알렸다. 11월 스릴러 전쟁, 22일 그 공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