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A·B씨와의 일문일답.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A씨: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0년도 1월부터 6월까지 약 6개월간 최소 10회 이상 유사성행위를 강요당했다. 특히 1월 경 B와 같이 불려간 날은 잊을 수 없다. 20여명이 같이 자는 축구부 단체 숙소에 그들(기성용과 외래교수)이 사물함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있었다. 숙소는 방에 침대가 없고 벽 한쪽에 사물함만 있는 구조다. 숙소에 다른 부원들도 여러 명 있었다. 나는 그날 하기 싫어서 핑계를 댔다. 마침 구단 관계자였던 아버지가 해외 전지훈련을 간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탄 비행기가 추락할까 봐 걱정된다’며 울었더니 다른 선배가 그럼 오늘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서 옆에서 혼자 하던 B와 눈이 마주쳤다.
B씨: 그 날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이유다. 당시에 ‘A만 혼자 빠져나갔다’고 생각해 배신감을 느꼈다. 나중에 A와 두고두고 그 날 얘기를 했다. 너만 혼자 거짓말해서 빠져나갔다고 비난하면, A는 ‘네가 한 그 사람(기성용)은 대스타라도 됐지 않냐’면서 씁쓸한 농담을 했다.
-왜 거절하지 못했나.
A씨: 우리가 처음부터 좋다고 했을 것 같나. 당연히 싫다고 했다. 대들지는 못하고 ‘아 형~ 안 하면 안 돼요?’라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운동부에서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허벅지 시그니’라고 허벅지의 연약한 부분을 무릎으로 찍어버리는 일을 자주 당했다.
B씨: 나는 집도 어려웠고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했다. A처럼 눈물 흘리면서 가족들 핑계를 댈 만한 배경도 없다며 한탄했다. 아, 나는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갈 수 없다고 없구나 싶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너무 어렸다.
-피해자는 두 사람뿐인가? 왜 대상이 됐나?
A씨: 다른 피해자가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둘은 소위 말하는 ‘찐따’였다. 동기들한테도 맞을 정도로. B는 굉장히 위축돼 있었다. 부모님께 이를 수 없었던 건 1년 중에 부모님과 생활하는 시간보다 숙소에서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당시 일주일에 한 번씩 ‘적기 시간’ 이라고 자신이 당한 폭행 사실을 적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도 적지 않았다.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이 가는가.
-피해자라는 두 사람이 중학생 시절엔 후배들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A씨: 우리도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피해자들에게 다시 사과드린다. 찾아가서 직접 사과할 의향이 있다. 2004년도에 축구팀 동기 10여 명이 후배들을 폭행하고 성추행했다며 후배 중 누군가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10명의 피해 사실이 다 똑같은 건 아니다. 누군가는 폭행만 했고, 누군가는 성추행만 했고, 누군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명이 다 같은 명목으로 징계를 받았다. 그 일로 나는 전학 처분을 받고 해외 유학을 갔다.
B씨: 우리가 행한 폭력이 당한 폭력보다 덜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가해자라고 해서 2000년에 당한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 어느 쪽이든 가해자는 그에 마땅한 벌을 받으면 된다.
-두 번째 폭로 보도자료에서 ‘성폭력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 증거란 무엇인가.
A씨: 증거에 관한 부분은 모두 변호사에게 일임했다. 변호사가 판단할 일이다.
-기성용 측과 접촉한 적이 있다는데 어떤 말이 오갔나.
B씨: 양쪽에 모두 친분이 있는 한 후배가 나에게 통화해보라며 기성용의 연락처를 보냈다. 약 25분간 기성용과 통화했다. 기성용은 가해 사실을 부인하면서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는 기사를 내라고 했다. 나에게 ‘기회를 준다’고 해서 내가 ‘형이 우리에게 기회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로 계속 얘기가 어긋났고 나는 ‘그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지난 24일 박지훈 변호사를 통해 첫 폭로가 나왔고, 26일 두 번째 폭로를 했다. 그 사이 폭로를 번복하려 했던 걸로 아는데 왜 그랬나.
A씨: 축구업계에 우리의 신상이 다 퍼졌다. 2004년 사건이 들춰지면서 여론으로부터 몰매를 받았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었다. ‘이렇게 게 된 거 내가 다 욕먹고 떠안고 갈 테니까 만나서 사과만 해라’고 요구를 했고, 기성용 측은 ‘오보 기사를 내주면 만나주겠다’고 했다. 그 제안을 놓고 고민한 것이다.
-기성용의 돈을 노리고 폭로했다는 의혹도 있다. 20년이 지나서 왜 뒤늦게 폭로를 했나.
A씨: 나는 상대편에도 ‘돈 필요 없다, 사과만 하라’고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공소시효도 지났고 20년 전 일로 소송을 할 수도 없다. 상대편이 우리를 무고죄나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할 위험만 있다. 그런데도 최근 학교폭력에 대한 ‘미투’ 흐름이 일면서 용기를 냈다. 상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높은 산같이 느껴졌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변호사를 찾아간 것이다.
B씨: 우리는 적어도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왜 상대편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 끝까지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다. 당시 성폭력은 숙소에 다른 선수들도 있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목격자나 또 다른 피해자나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가진 사람이 나와줬으면 한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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